여성 신용권
From 신용의 세기, an encyclopedia of a world that didn't happen
여성 신용권은 여성이 남편이나 다른 남성 보증인의 동의 없이 자기 명의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리킨다. 이 권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헌법 또는 민법상 기본권으로 다루어지지만, 그 기원은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개별 소송과 입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계에서는 이 권리의 성립 시점을 좁게는 1849년 「여성 재산 및 신용에 관한 법」의 제정으로, 넓게는 1841년 에든버러(Edinburgh) 상사법원 판결로 잡는 두 견해가 병존한다.
이 권리의 출발점으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건은 1841년 에든버러 상사법원에서 다루어진 과부 상인 마거릿 앨런의 소송이다. 앨런은 남편이 죽은 뒤 포목상을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거래 은행에 자기 단독 명의의 계좌 개설을 요청했으나, 은행 측은 관습법상 여성에게는 독자적 신용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앨런은 이 거부가 자신의 상거래 능력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상사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과부 상인이 이미 자기 책임으로 상거래를 영위하고 있다면, 은행이 그 신용을 인정하지 아니할 근거는 관습에 있을 뿐 법에 있지 아니하다.
— 1841년 에든버러 상사법원 판결문, 마거릿 앨런 대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사건
이 판결은 처음에는 과부에게만 적용되는 좁은 예외로 이해되었고, 기혼 여성 일반에게 확장되기까지는 다시 몇 년이 걸렸다. 일부 법제사가들은 앨런 사건이 스코틀랜드 상법 특유의 과부 상속 관행에서 나온 우연한 판결이었을 뿐, 잉글랜드 의회의 입법과는 직접적 계승 관계가 없다고 본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이 판결이 1840년대 후반 잉글랜드 의회 안팎에서 벌어진 논쟁에 실제로 인용되었음을 근거로, 두 사건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파악한다.
1849년 영국 의회는 「여성 재산 및 신용에 관한 법」을 통과시켜 기혼 여성도 남편의 동의 없이 자기 명의로 예금 계좌를 열고 대출 계약을 맺을 수 있음을 성문화했다. 구어체로는 흔히 '여신법'이라 줄여 부른다. 이 법은 그 전까지 기혼 여성의 재산이 원칙적으로 남편에게 귀속된다고 보던 커버처 원칙의 예외를 신용 거래 영역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법안은 상원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는데, 반대 논거의 핵심은 여성에게 독자적 채무 능력을 인정하면 가계의 통일성이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랭커셔 면직물 산업 지역의 여성 노동자와 소규모 상인들이 청원 운동을 벌이며 법안을 지지했고, 결국 법은 근소한 표차로 통과되었다.
법 시행 초기에는 은행 창구 실무가 법의 취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1850년대 초 런던의 한 상업은행 내부 지침서는 여성 명의 계좌 신청을 받을 때 "가능한 한 남편이나 부친의 동석을 권유하라"고 적어, 법이 보장한 권리와 실제 창구 관행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References
- 1.에든버러 상사법원 판결문 원본철, 1841년]], 스코틀랜드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상사부 제12함
- 2.여성 재산 및 신용에 관한 법 제정 경위]], 헨리 코브던, 1889년, 런던 의회사료편찬소
- 3.여상은행 창립 반세기사]], 이디스 파넬, 1922년, 여상은행 출판부
- 4.국제 여성신용연합 규약 및 초기 회의록]], 1913년~1920년, 제네바 연합 문서고
- 5.19세기 유럽 여성 명의 소상공업 통계 연구]], 마르타 라이헨바흐, 1967년, 함부르크 경제사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