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봉사(兩姓奉祀)
From 두 가문의 나라, an encyclopedia of a world that didn't happen
양성봉사(兩姓奉祀)는 조상 제사에서 아버지 계통의 성씨와 어머니 계통의 성씨를 함께 받들고 양쪽 조상을 동등하게 섬기는 관행이다. 조선 초기 이래 양측친속제(兩側親屬制)의 법적 기초 위에서 발전해온 이 원칙은 1991년 대한민국 친족상속법 전면 개정과 그에 따른 헌법재판소 판례를 통해 현행 법제의 핵심 규범으로 확립되었다.
조선 초기 세종은 1436년 《경국대전》 편찬 과정에서 주자가례식의 적장자 중심 봉사 제도를 성문화하지 않기로 지시했다. 대신 고려 이래의 관행을 기초로 하여 딸과 아들이 상속과 제사에서 비교적 동등한 지위를 갖도록 했다. 실제로 1485년 《경국대전》 호전(戶典)이 반포되면서 딸의 분재(分財) 몫을 명문화했으나, 제사 승계 권리에 대해서는 명시적 규정 없이 관행에 맡겨졌다.
조선시대 중기까지 제사 관행은 지역과 가계에 따라 다양했다. 1600년대 기록들을 보면 양반가에서도 처가살이와 외손봉사(外孫奉祀)가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으로 남아 있었고, 특히 딸이 없는 경우 처가 계통이 제사를 주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다만 이 시기 정통 주자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특히 서인 계열 양반들 사이에서 적장자 중심의 부계 제사를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증대했다.
1734년 영조 대에 예조가 '양측봉사절목(兩側奉祀節目)'을 반포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제동을 건 주요 정책이었다. 이 절목은 딸이 낳은 자손도 명시적으로 제사 승계권을 갖도록 재확인함으로써, 법제도 차원에서 양측 계통의 제사권을 보호하려 했다. 다만 이후 영조-정조 시대의 학파 활동에서 이 규정을 둘러싼 해석상 논쟁이 계속되었고, 일부 지역과 문중에서는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1907년 대한제국은 민적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호주제 채택 대신 '가구등록제(家口登錄制)'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호적에 부부 쌍방의 성씨와 양측 조상을 병기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제사 승계 문제를 호주 한 사람의 권한이 아닌 양측 가계 전체의 기록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호주제가 도입되는 와중에도 조선의 기존 가구등록 기록은 상당히 유지되었으며, 이는 광복 이후 법제도 정비 시 중요한 선례로 작용했다.
1945년 이후 대한민국은 초기 민법 제정에서 전통 관행과 현대 법리를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1960년 민법 제정 당시 제사 규정은 여전히 부분적 애매성을 남기고 있었으나, 실제 판례들은 점차 양측 계통의 제사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핵가족화와 함께 제사의 실행 주체가 이성(異姓)의 딸 세대로 이동하는 사례들이 증가하면서, 이를 법적으로 정당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References
- 1.우리나라 친족상속법의 전개 이건춘]], 1995, 문우각, 45-87쪽
- 2.양측봉사절목의 입법 배경과 영향 김태호]], 2001, 한국 법제사 연구, 제7권 3호, 134-167쪽
- 3.조선시대 제사 관행의 지역적 다양성 박은식]], 1998, 한국 사회사 총서, 도서출판 탐구, 220-245쪽
- 4.대한제국 가구등록제 연구 자료집 사법부 기록보존소]], 1907-1909년 호구부 원본 및 추출본
- 5.현대 가족법과 전통의 충돌 및 조화 정영희]], 2005, 한국법학 진흥 재단, 78-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