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친속제(兩側親屬制)
From 두 가문의 나라, an encyclopedia of a world that didn't happen
양측친속제(兩側親屬制)는 부계와 모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계통을 함께 친족으로 인정하는 원리를 가리키며, 조선 초기부터 성문화되어 오늘날 대한민국 친족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 질서 아래에서는 상속에서 딸과 아들의 몫이 원칙적으로 같고, 조상에 대한 제사도 아들 계통이 독점하지 않으며, 혼인 후 거주지 또한 어느 한쪽 집안으로 정해지는 관습이 없다. 흔히 이 체제를 부계 중심 종법 질서의 '부재'로 설명하는 시각이 있으나, 다수의 친족사 연구자들은 이를 결여가 아니라 고려 이래의 관행이 국가 법제 속에서 지속적으로 선택되고 강화된 결과로 본다.
고려 시대의 상속과 제사 관행에 관한 사료는 많지 않다. 남아 있는 분재기(分財記) 몇 건과 사찰 소장 문서를 근거로, 연구자들은 고려 후기 양반가에서 딸과 아들이 대체로 균등하게 재산을 나누어 받았고, 사위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처가살이가 드물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다만 이 시기의 기록은 왕실과 사원, 조세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일반 가호의 실상은 간접적으로만 재구성될 뿐이다.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으로 일부 사대부 가문이 부계 위주의 예법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이것이 널리 퍼졌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조선 건국 이후 국가는 통치 규범을 정비하면서 중국의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유교적 통치 이념의 전범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1436년, 세종은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적장자가 제사를 전담하도록 하는 조항을 보류시켰다. 당시 예조의 논의를 기록한 실록 사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전한다.
딸도 부모를 봉양하고 아들도 부모를 봉양하니, 어찌 제사만을 아들에게 몰아줄 것인가.
— 《세종실록》 사평, 병진년 기사
이 결정의 배경에 대해서는 학계의 해석이 갈린다. 한 갈래는 세종이 기존 양반가의 반발을 우려해 절충안을 택했다고 보는 반면, 다른 갈래는 이것이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균분상속을 통해 지방 세력의 토지 집중을 견제하려는 적극적 국정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이 보류 조치는 1485년 반포된 《경국대전》 호전(戶典)에서 딸과 아들의 분재 몫을 동등하게 명문화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는 이후 조선의 상속 소송에서 기준으로 반복 인용되었다.
References
- 1.경국대전(經國大典) 호전 역주]], 김순영, 199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2.분재기(分財記)로 본 조선 전기 상속 관행]], 이문형, 2005, 역사학보 172호
- 3.양측봉사절목(兩側奉祀節目) 연구, 박제인, 1987, 조선시대사학보 41집
- 4.가구등록제(家口登錄制)의 형성과 변천, 최윤경, 2013, 법사학연구 29호
- 5.양가보(兩家譜) 편찬 관행에 관한 현지 조사, 정하은, 2016, 한국친족학회지 8권 2호